
재작년 가을, 글쓴이는 강원도 고향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갔다가 6.25 전쟁 당시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살렸다는 이야기의 전말을 친척에게서 듣게 됐다고 한다.
피난을 떠나지 못한 다친 아이들과 노인들이 방공호에 숨어 있을 때, 미군 탱크의 포신이 그곳을 향했다. 아버지는 앞으로 나서 영어로 사정을 설명하고, 공습 때 불에 탄 것을 한 장 한 장 풀로 이어 붙이고 사라진 글자를 손으로 써넣어 복원한 영어 성경을 미군에게 보여 주었다. 그 책을 본 미군의 태도가 달라져 총을 거두고 먹을 것을 건넸으며, 군의관은 아이의 다리에 박힌 파편을 빼 주었다.
아버지는 이 인연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올라와 평생 영어를 기반으로 살았다고 한다. 영어 덕분에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영어 덕분에 삶을 일궜다는, 마치 이야기처럼 그럴듯해 오히려 믿기 어려운 사연이다.